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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GA

SONGGA-Genea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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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1521 (세종~중종) 지신공 휘(諱) 린(璘)의 7세손으로 여랑부원군(礪浪府院君) 휘(諱) 현수(玹壽)의 따님으로 탄생하셨다,
1454년(단종 2)에 열다섯의 어린나이에 왕비(王妃)로 책봉(冊封)되어 궁중(宮中)으로 들어갔다,
이듬해 6월 11일 단종(端宗)이 숙부(叔父)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王位)를 선위(禪位)하고 상왕이 되자 왕비는 의덕대왕비(懿德大王妃)에 봉해졌다,
이듬해1456년(세조 2) 6월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이개(李개), 류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등 사육신(死六臣)의 단종 복위 운동을 문제삼아 단종(상왕)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降等)되어 영월(寧越)로 유배(流配)되고 정순왕후도 부인으로 강봉(降封)되었다,
단종의 나이 열일곱, 정순왕후가 열여덟살 때의 일이다, 그렇게 해어진 젊은 부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단종이 사사(賜死)되었기 때문이다,
궁궐에서 추방당한 정순왕후는 동대문밖 숭인동 동망봉(東望峰) 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안 왕후는 조석으로 이 산봉우리에 올라 소복하고 단종의 유배지인 동쪽을 향해 통곡을 했는데 곡소리가 산 아랫 마을까지 들리면 온 마을 여인네들이 땅 한번 치고 가슴한 번 치는 동정곡(同情哭)을 했다고 전한다,
정순왕후가 동쪽을 향해 통곡을 했다고 동망봉이란 이름이 유래 되었다,
청계천에 있는 영도교(永渡橋)에도 단종과 영순왕후의 애절한 사연이 묻어있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그 다리에서 이별한 후 다시는 못 만났다 하여 사람들이 "영 이별 다리"로 불렀는데 후세에 와서 영원히 건너가신 다리라는 의미로 영도교라 불리어진 것이다,
열여덟에 홀로 되신 정순왕후는 초막집에서 시녀(侍女) 셋과 함께 살며 시녀들이 해오는 동냥으로 끼니를 이었다고 한다,
이소식을 들은 세조(世祖)가 근처에 "영빈전"이라는 아담한 집을 짓고 식량을 내렸으나 정순왕후는 끝내 거부(拒否)했다,
그리고 자줏물 들이는 염색업으로 여생을 때 묻히지 않고 살았다 해서 그 골짜기를 지금도 "자줏골"이라고 부른다,
동망봉과 영도교 중간쯤 정순왕후가 살았던 터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서울 유형문화 제5호)라는 비각이 현존 하는데 그 비각에는 영조(英祖)가 눈물을 머금고 썼다는 "煎峰後岩於天萬年歲 辛卯 九月 六日 飮涕書(전봉후암어천만년세신묘 구월 육일 음체서)"라는 문구가 비각에 있다,
송비(宋妃)가 초막을 짓고 살았던 집이 정업원이고, 그 옛터임을 기리고자 세운 비석이다,
또 <한경지략(漢京識略)>에 보면 영도교 인근에 부녀자들만 드나드는 금남(禁男)의 채소 시장이 있었는데 이 특이한 여인시장(女人市場)도 송비의사연에서 유래한다,
송비를 동정한 성 안밖의 부녀자들이 끼니때 마다 푸성귀를 갔다주곤 했는데, 푸성귀를 갔다 주려는 사람이 너무 많이 긴 행렬을 이룰정도 였다고 한다,
궁에서 이를 못하게 말리자 여인들은 지혜를 모아 송비의 초막에서 멀지 않은곳에 푸성귀를 파는 척 모여들어 몰래 왕비에게 갖다 주곤 했다,
이것이 여인들만의 시장이 생기게 된 계기라 전한다,
오랬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내려오는 동안 윤색(潤色)되기는 했겠지만 단종과 이별한 송비의 기구한 운명이 많은 여성들에 한(恨)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우리나라 무속 신앙으로 각지에서 가장 많이 모셔지고 있는 송씨부인이 바로 한을 머금고 살다가 죽은 정순왕후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살아서 많은 여성들을 울리고 죽어서도 토속신이 되어 수백년 민중의 공감을 얻으며 그들의 한을 위로했다는 말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수많은 왕후와 후궁들 중에서 가장 한많은 일생을 살았던 송비가 1521년(중종 16) 6월 4일승하 하니 춘추 82세셨다,
송비는 대군부인의 예우로 양주(楊州) 남쪽 군장리(郡場里, 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에 모셔졌다,
그후 177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 11월 6일 단종복위와 더불어 정순왕후로 추복(追復)되어 종묘에 신위가 묘셔지고 능호(陵號)를 사릉(思陵)이라고 했다,
사릉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지난 1986년부터이다, 사릉이 공개되면서 단종과 정순왕후의 능을 한 곳에 모시자는 목소리가 때때로 들린다,
젊은 시절에 생이별한 지 500여 년, 이제라도 두 분의 한을 풀어 드리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듯 하다,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 묻힌 단종을 정순왕후 곁으로 모셔와 진정한 의미의 복위를 이루어 주자는 의견도 있고, 사릉을 장릉 옆으로 이전하자는 운동도 벌어 지고 있다,
사릉의 양식은 병풍석과 난간석 모두를 생략한 채 봉분이 솟아 있으며, 석양과 석마도 가각 한쌍씩만 봉문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사악한 것을 피한다는 뜻의 석양(石羊)은 동물의 왕인 호랑이와 함께 당나라 때부터 대관의 능묘에 수호석수로 설치되었다,
이것이 공민왕(恭愍王). 노국공주의 현. 정릉(玄. 正陵)에서 본격적으로 받아 들여서 조선왕릉이 기본 형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양과 석호를 두쌍씩 봉분 주위에 둘러 세우는데 장릉. 사릉처럼 추봉된 경우에는 한 쌍씩만 배치하여 차등을 두었다,
사릉은 사적제2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충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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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비의 친정 아버지 송현수>

여산송씨 후손들 중에서 세조의 즉위를 전후하여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단종비인 정순왕후와 그의 친정 아버지 송현수다.

송현수의 시호는 정민이며 송복원의 아들이다. 본래 수양과는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단종 2년에 그의 딸이 비로 책봉되자 지돈령부사가 되고 여양군에 봉해졌다.

정치사의 변동이 크게 없는 시절이었다면 그는 부원군으로 영달할 뿐 아니라 그의 집안도 크게 번창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종, 세조조의 정변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성삼문 등의 사육신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수양대군의 두둔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성대군이 사사되는 상황에서는 생명조차 부지할 수 없었다.

세조의 공신들이 중심이 된 양사(兩司)의 주장에 의해 주륙되고 그의 묘소조차 어디인지 찾을 수 없다.

숙종 24년(1698년)에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위되자 그 이듬해에 영돈령부사에 추증되고 여양부원군에 추봉되었다.


<단종비 정순왕후>
송현수의 딸로 단종비로 책봉된 정순왕비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됨에 따라 부인으로 강봉된다. 그 후 단종이 영월로 귀양가자 청룡사에 스님으로 들어가서 일생을 마쳤다.

아버지 이하 일문이 멸족당하는 정치사의 변동 속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친 것이다.

숙종조에 이르러 단종이 복위되자 왕비도 정순왕후로 추봉되었다. 청룡사는 후에 영조의 명에 의해 정업원(淨業院 )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 사릉 : 경기 남양주시 진건면 사능리 산65-1. 사적 제20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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