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구역으로 이루어져있다. (북측 해설원은 7개 구역)
1.만천구역: 장안사터. 삼불암, 표훈사, 정양사
2.만폭구역: 만폭동, 보덕암, 진주담
3.백운대구역: 마하연터, 묘길상, 백운대
4.명경대구역: 백천동, 영원동, 수렴동, 백탑통
5.망군대구역
6.태상구역
7.구성동구역
8.비로봉구역: 은사다리 금사다리, 일출, 월출봉
<온정령을 넘어 내금강으로>
오전 8시 경에 온정각을 출발하여 금강산호텔, 금강산 온천(원탕, 북측온천)을 지나 왼편에 온정천을 끼고 한하계를 따라 온정령(857m)을 넘어 내금강으로 들어간다. 온정령 고개 60리 길은 백여섯 굽이를 돌고 돌아 올라가야 한다고 할 정도로 험하고 가파르다.
한하계는 금강산관광의 중심지인 온정리에서 만물상등반의 출발지인 만상정까지 10km구간을 말하며 아침저녁으로 찬 안개가 낀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한하계에 들어서면 좌측에 온정리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매바위’가 나타난다. 보는 이에 따라 펭귄처럼 보이기도 한다. 길옆에는 금강송들이 도열해 있다.
좌측으로는 하, 중, 상관음 연봉들이 나타나는데, 하관음봉에서 신계사 뒤편의 문필봉으로 이어지는 ‘극락고개(원호고개)’가 있고 꼭대기에는 괴나리봇짐을 진 형상의 ‘노장바위’가 내려 보고 있다.
우측으로는 수정봉이 밝은 모습으로 서있다. 이곳은 갖가지 수정도 많이 발견되고 미리 신청하면 등산도 가능한 구역이다.
중관음봉의 산 중턱에는 ‘곰바위’가 나타나고 아래에는 ‘문주담’의 시퍼런 물웅덩이가 나타난다. 문주담은 금강산에서 가장 크다는 옥류담에 못지않는 크기였으나 여러 번의 홍수로 메워져 작은 못이 되었고 이곳에서 전해오던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도 구룡연의 상팔담으로 옮겨갔다.
조금 지나면 관음연봉에서 떨어지는 37m의 장쾌한 ‘관음폭포’가 나타난다. 이 골짜기를 ‘만냥골’이라 한다. 오래된 산삼을 얻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좀 더 지나면 금강산에서 가장 큰 높이 100m의 계절폭포인 육화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길옆에는 봉래 양사언의 ‘육화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의 조망이 뛰어나다. 사실 육화암은 맞은편의 관음연봉을 말하며 ‘중관음바위’라고도 한다. 육화암을 지나면 한화계의 상류인 만상계이고 이곳의 갈림길에 있는 만상정은 만물상 등반의 출발지이다.
만상정에서 2km 더 가면 온정령고개이다. 온정령은 외금강의 고성군과 내금강의 금강군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지금은 터널로 차들이 오가지만 터널이 생기기전에는 온정령을 넘어가는 도로가 있었다. 이 도로는 일제시대에도 공사를 하다 실패한 것을 한국동란 당시인 1950년 11~12월에 고립된 인민군의 보급을 위해 북측 군과 인민들이 뚫은 것이다.
온정령터널을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왕복 1차선의 좁은 터널이다. 터널을 지나면 내금강 구성동구역이다. 조금 내려오면 구성폭포가 나타나고 4단의 폭포도 나타난다. 연이어 금강군 구성동마을이 나타나고 좀 더 지나면 단풍리마을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고성읍까지는 26km이고 금강읍까지는 16km가 남아있다. 온정리에서 45분 정도가 걸린다. 차량은 보통 시속 30km이하로 운행하게 되어있고 온정령을 넘으면 비포장도로다. 그렇지만 심하게 차량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단풍리를 지나면 금천리마을이다. 두 마을은 4km정도 떨어져 있다. 온정리에서 1시간 5분 정도 거리고 금강읍은 4km정도 남아있다. 금천리마을은 금천중학교도 보이고 꽤 큰 마을로 보인다.
금천리를 지나면 급강읍에 들어온다. 온정리에서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집집마다 커텐을 내렸고 차량이 지날 때 살며시 내다보기도 한다. 차도에 인접한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우리 차량을 발견하면 등을 돌리고 일손을 놓고 쉬는 모습이 흔히 보인다. 특히 작년 봄, 해금강을 보러 가는 길에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게 담장 뒤에 숨어 일손을 놓고 쉬는 모습을 볼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우리의 유람이 북측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엄청난 불편함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온정리에서 1시간 15분정도 가면 금강읍에서 회양 64km와 속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을 조금 지나면 고려태조 왕건의 천리고개전설이 있는 곳이 나온다.
15분 정도 더 가면 내금강 5km라는 도로표지석이 보인다. 드디어 내금강이 가까워졌다.
내금강에는 27개의 유적이 있고 특히 이곳의 전나무는 500년 이상 된 고목이고 제일 오래된 것은 1500년 이상 되었다고 북측 해설원의 설명이 있었다.
지나는 길옆의 좌측 언덕위에는 금강산 3고탑의 하나인 장연사지의 3층석탑도 볼 수가 있었다. 장연사지에서 장안사 입구인 만천교까지는 버스로 10분 거리다. 온정리에서 장안사까지는 44km이다.
내금강관광은 아래쪽에 있는 장안사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표훈사까지 버스로 곧장 가서 여기에 하차하여 내금강문을 지나 만폭동을 탐승한 후 마하연, 묘길상을 보고 뒤돌아 오면서 보덕암과 표훈사를 관람하는 일정이었다. 온정리에서 표훈사까지는 차량으로 1시간 40~50분 정도 걸린다. 점심식사는 표훈사 솔밭에 야외뷔페식으로 차려진다. 식사와 간단 휴식을 취한 뒤 오후 2시 30분경에 동시에 도보로 출발하여 백화암지, 삼불암, 울소, 장안사터를 관람하고 오후 4시경에 장안사 주차장에서 버스로 출발하여 온정리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답사기는 만폭동부터 묘길상, 보덕암까지는 답사한 순서대로 쓴다. 오후의 일정은 표훈사에서 장안사로 내려가면서 답사했으나 답사기는 장안사에서 표훈사로 올라오는 순서대로 적는다.
<만폭동(萬瀑洞)>
표훈사에서 100m 쯤 오르면 나오는 내금강 금강문에서 화룡담까지의 1km구간을 말한다. 금강산에서 계곡미가 뛰어난 곳으로 ‘만폭’이란 폭포가 만개나 이를 정도로 많다는 뜻으로 온통 못과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관음폭포 외에는 이렇다 할 규모를 갖춘 것이 적고 못이 더 많다.
1.금강문
바닥 폭 5m, 높이 2.5m, 길이 4m의 돌문으로 들어가면서 좁아져 삼각형을 이룬다.
문 앞 왼쪽 바위에 ‘金剛門’ 이라 새겨져 있고 元化門이라고도 한다.
눈앞이 열리고 요란한 물소리가 들린다.
2,금강대
금강대를 지나면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좌우로 겹겹이 싸인 바위 사이로 계곡을 따라 들어가는데 왼쪽의 원통골과 만천의 물이 마나는 합수목에 이르면, 절벽을 이룬 금강대가 나타난다.
아래쪽에 자리 잡은 만폭교 아래, 길이 200m에 이르는 거대한 은빛 너럭바위에는 양사언의 글씨라 전하는 ‘만폭동’, ‘봉래풍악 원화동천’ 나옹의 ‘천하제일 명산’, ‘천암경수 만학쟁류(千岩競水 萬壑爭流)’–‘천 개의 바위는 아름다움을 경쟁하고 만 갈래의 계곡은 다투어 흐른다’, 삼산국(三山局)–옛날 삼신산의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던 자리에 새긴 바둑판으로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에만 바둑을 두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둑판은 신라의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 등 사선이 바둑을 두었다고 ‘사선기반(四仙碁盤)’이라고도 부른다– 등의 글이 새겨져 있다.
3,청룡담
오선(五仙)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 옆에 푸른 물이 찰랑거린다.
4,관음담과 관음폭포
24m의 누운 폭포인 관음폭포와 그 물을 받아들이는 관음담.
5.세두분과 수건바위
보덕암 전설에 나오는 ‘세두분(보덕각시가 머리를 감았던 곳)’과 ‘수건바위(보덕각시가 수건을 드리웠던 곳)’가 있다.
6.백룡담
희맑은 바위 둘러싸여 넓적하게 자리 잡은 백룡담
7.영아지
보덕각시의 그림자가 비친 곳이다.
8.만폭팔담(萬瀑八潭)
연이어 꼬리를 무는 푸른 여덟 개의 못으로 외금강의 상팔담과 견줄 만하다 해서 ‘내팔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덟 개의 못은 각자 나지막한 폭포를 걸치고 있다.
1)흑룡담(黑龍潭)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이 도는 못. 전서체 글씨로 각자. 깊이 7.5m, 넓이 427㎡이다.
2)비파담(琵琶潭)
흑룡담 40m 위쪽, 생김이 비파 같고 폭포의 소리도 비파소리와 같은 작은 소, ‘비파담’ 글씨가 있었으나 사라졌다.
3)벽파담(碧波潭)
비파담에서 오는 도중에 ‘뒹군바위’가 있다. 일고여덟 번 구르고 바로섰다는 바위인데 새겨진 수십 개의 이름이 바로 또는 거꾸로, 모로 새겨져 있다.
4)분설담(噴雪潭)과 분설폭포
벽파담을 지나 25m쯤 가면 ‘지도바위’ ‘만상암’이 있다.
지도바위 오른쪽에 삼복더위에도 눈보라가 날리고 찬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든다는 분설담과 폭포가 있다. 바위에 ‘분설담’각자가 있다.
5)진주담(眞珠潭)과 진주폭포
만폭팔담가운데 기세가 가장 좋다는 평을 듣고 있다. 벽파담, 분설담과 더불어 만폭팔담을 대표하는 못이다.
진주폭포는 높이 13m로 네층을 이룬다. 못의 깊이는 7.5m, 넓이는 412㎡
진주담 오른쪽 바위에 ‘眞珠潭’, ‘水簾’의 각자가 있다고 한다.
진주담 위쪽에 있는 돌확은 ‘윗소’라는 못이다. 여기에서 물을 받았다 진주폭포로 물을 흘린다. 계속 오르면 양쪽에서 솟은 봉우리들이 계곡 안쪽으로 좁아지면서 돌산이 나무숲으로 바뀌는데, 왼쪽 향로봉 경사면에 ‘法起普薩 天下奇絶(법기보살 천하기절)’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이라는 글씨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법기보살 천하기절’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자신이 쓴 구룡연의 ‘미륵불’ 글씨 다음으로 큰 금강산의 글씨다.
6)구담(龜潭)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가 머리를 쳐들고 물 가운데 앉아 있는데서 유래했다. 흰 너럭바위를 씻으면서 왼쪽으로 꺾여 흐르는 물길에도 거북 모양의 조그마한 확이 있다.
‘龜潭’이라는 글씨와 ‘천하제일명산’이라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7)선담(船潭)
구담에서 위쪽으로 50m 쯤 떨어져 있다. 못의 모양이 배와 같다 해서 이름 지었다.
8)화룡담(火龍潭)
못의 깊이가 3.3m. 우거진 숲과 어울려 못의 물빛은 짙푸른 비취색이다.
왼쪽 길가에 ‘화룡담’이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는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 바위에 올라서면 동북쪽으로 중향성이 멀리 보이고, 동쪽으로 월출봉, 혈망봉, 법기봉이 마주 보이고, 남쪽으로 지나온 만폭동의 여러 못들이 층층이 연이어 있는 것이 내려다보인다.
<백운동(白雲洞)>
백운대구역은 화룡담을 지나 내금강 비로봉구역에 이르기 전 사선교까지를 아우르는 일대를 말하며 설옥동, 백운동, 화개동, 내무재골 등 여러 계곡과 산봉우리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 백운대(1106m)이다.
1.마하연(摩訶衍)터
화룡담에서 계곡을 따라 500m쯤 오르면 나온다.
마하연에서 마하(摩訶)는 대승(大乘)이라는 뜻이고 연(衍)은 넘친다는 뜻이다. 만폭동 위 골짜기가 동쪽으로 틀어지면서 846m 높이에 평평한 대지를 이룬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절터입구에는 마하연 중건비와 공덕비가 3기가 서 있다. 그 중에 마하연 공덕비는 20세기 초 유물이지만 머릿돌에 새긴 도깨비 문양이 특이하다.
뒤쪽에는 촛대봉(1145m), 앞쪽에는 혈망봉과 법기봉이 솟아 있으며, 왼쪽으로는 중향성, 나한봉이 둘러 있다. 중향성은 ‘수많은 향불’이라는 이름으로 향불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실안개처럼 줄을 그으며 겹겹이 성벽을 둘러친 듯 절묘하다.
마하연은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이 창건 한 것으로 화엄십찰의 하나이고 나옹선사가 주석하기도 했다고 전하며 팔공산 운부암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2대 선방이었다. 1831년 월송선사가 중건한 근래의 절은 방 56칸을 가진 ‘ㄱ’형의 건물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오른쪽 옆길을 따라 50m 올라가면 칠성각(보존유적 제297호)이 있다. 마하연터에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마하연터 부근은 금강초롱(천연기념물 제233호)의 군락지이다. 8~9월경에만 피는 푸른 가지색의 초롱 모양의 송이꽃을 피운다. 1909년에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2,묘길상(화개동)
마하연터를 지나 만폭동계곡의 상류인 사선교까지 약 2km 구간을 화개동이라 부른다.
화개동은 탁 트인 넓은 골 안으로, 그다지 깊지 않은 맑은 못들과 누운 폭포들이 어울려 있고 주위엔 나무숲이 빽빽하고 조용하고 수려하다.
불지암터와 신라의 사선(화랑)에 양사언을 끼워서 ‘오선’이라는 오선암(五仙岩)을 지나, 낮고 평평한 언덕 뒤로 돌아가면 삼각형의 매끈한 높이가 40m에 이르는 거대한 암벽에 조각된 높이가 15m에 이르는 마애불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며 예술적으로도 잘 조각된 불상이다.
마하연 묘길상 마애불(지정고적 제256호)은 600여년 전 나옹조사가 원불로 조각했다고 전해온다.
바위의 왼쪽에는 직암 윤사국이 쓴 ‘妙吉祥(묘길상)’이라는 글씨가 있다.
묘길상 앞에는 높이가 3.36m의 묘길상 앞 석등이 있다. 사각석등에 등불을 켜는 계단도 갖추어 있고 지붕은 사모지붕에 큼직한 꽃봉우리 모양으로 장식되어있다.
3.보덕암
분설담 맞은편의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 법기봉 중턱에 높이 7.3m나 되는 구리기둥하나에 의지하여 벼랑에 간신히 기댄 정면 1칸, 측면 1칸의 단칸집 암자 ‘보덕암(국보유적 제99호)’이 있다.
고구려 영류왕 10년(627)에 보덕화상이 수도하기 위해 자연굴을 이용해 지었다.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어 오늘에 이른다.
본전인 관음전은 단층집이면서도 눈썹지붕 위에 팔작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을 차례로 배합하여 다층집으로 보이게 설계되었다. 보덕암 안에 불상은 없다.
구리기둥은 나무기둥에 19마디의 동판을 감은 것인데, 중종 6년(1511)에 설치된 것이고, 암자는 숙종 1년(1675)에 고쳐 지은 것이다.
보덕암 위쪽에는 만폭동의 경계를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기묘한 바위들과 듬성듬성한 소나무 숲을 다 드러내는 대향로봉과 소향로봉이 의좋게 나란히 앉아 있다.




















































































